'50세' 대(對) '28세' 대 '28세'.

최근 5년간 미국 포천지의 '글로벌 500'에 신규 진입한 한국과 중국·미국 기업의 평균 나이다. 포천이 매년 전년도 매출액 기준으로 발표하는 '글로벌 500'은 전 세계에서 기업 가치를 가늠하는 대표적인 척도로 꼽힌다. 12일 본지가 한국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포천 '글로벌 500' 기업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의 신규 진입 기업의 평균 나이는 49.5세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28.2세)은 물론 이미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받는 미국(28.8세)보다도 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산업 생태계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데이터상으로 나타났다"며 "부가가치가 높은 신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대표 기업이 나타날 수 있도록 규제 혁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5년간 포천 '글로벌 500'신규 진입 4개社… 영역도 다양하지 못해

'SK하이닉스·CJ(2018년), SK㈜(2016년), 롯데쇼핑(2014년).'

최근 5년간 새로 포천 500에 이름을 올린 한국 기업이다. 롯데쇼핑은 중국 특수에 힘입어 2014년 신규 진입했으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 등으로 지난해 탈락했다. 바이오·제약·석유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M&A 작업을 펼치고 있는 SK그룹 지주회사인 SK㈜는 SK이노베이션·텔레콤 등 주력 계열사의 매출 증대를 바탕으로 2016년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442위, CJ는 493위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호황을 타고 실적 고공행진을 했고, CJ그룹 지주회사인 CJ는 주요 계열사에서 골고루 매출 증가가 이뤄져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러나 500위 에릭슨과 매출액 차이가 30억8000만달러, 2억4000만달러에 불과했다. 올해 반도체 불황과 내수 침체 등을 고려하면 이 기업들이 500위 밖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지난 5년간 43개로 가장 많은 기업이 진입했다. 중국은 민간 산업의 빠른 성장으로 우리보다 10배 이상 기업이 포천 500대 기업에 이름을 새로 올린 것이다. 5년간 신규 진입 기업 수가 총 97개임을 감안하면 중국이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그 뒤로 미국이 17개, 독일이 5개를 기록했다. 캐나다, 네덜란드는 한국과 같이 4개 기업이 진입했다. 태국(3개), 인도네시아(1개), 브라질(1개), 멕시코(1개) 등 신흥국에서도 글로벌 대기업이 등장했다.

◇신규 진입 기업 한국은 50세, 중국·미국은 28세

포천 '글로벌 500'에 새로 진출한 한국 기업의 평균 나이는 49.5세로 중국·미국은 물론 전체 평균(36.6년)보다 크게 높았다. 전문가들은 역동적인 경제 생태계가 무너졌다는 것을 수치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은 "포천 글로벌 500에 들어가려면 이른바 성공한 대기업이 된다는 것인데, 미국처럼 성숙한 시장에서 28년 만에 그렇게 올라간다는 것은 경제·산업 환경이 상당히 역동적이라는 의미"라며 "반면 우리는 새로운 흐름을 타고 신생 기업이 급부상하는 형태가 아니라 기존 대기업이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M&A 등을 통해 성장하는 활력이 떨어지는 생태계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글로벌 대기업이 탄생한 분야도 다양하지 못했다. 중국은 금융 부문에서 14개 회사가 새롭게 진입했고, 항공우주·방위 분야 3개사, 첨단기술 4개사 등 신산업 분야가 다양했다. 미국은 의료 분야에서 6개사로 가장 많은 기업을 진출시켰다. 의료보험회사 센틴(Centene), 타미플루를 개발한 것으로 유명한 제약회사 길리어드 사이언시스, 미국 바이오제약사 '빅4' 중 하나인 암젠 등이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첨단기술에서도 퀄컴(2014년), 페이스북(2017년) 등 4개의 기업이 포함됐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우리 정치권이 '탈규제'를 최우선으로 내세워야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이해집단 반발에 인기영합적으로만 대응을 하니, 우리 산업계에선 신생 대기업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